월간 훈노트 Volume 1
강남언니에 합류하다
회사 인수 합병 덕분에 자연스럽게 면접 기회를 얻었고, 결국 강남언니로 이직했다. 큰 기대를 품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면접 과정에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늘 혼자 씨름하던 고민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답에 이어 팀의 고민과 해결 방향을 진솔하게 공유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 내가 몇 년째 품고 있던 고민을 면접관들이 칼처럼 집어내며, 팀 차원에서 어떻게 풀고 있는지까지 들려주니 반할 수밖에.
입사 후 한 달, 나는 코드보다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데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코드에 담긴 도메인 로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기능 하나를 구현하더라도 도메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하니, 맥락 설명을 위한 불필요한 미팅이 사라졌다. 대신 역할과 책임의 관점에서 더 치열하게 플래닝하고, 기획자부터 개발자, 세일즈, 고객경험 매니저까지 모두 무엇이 되고 안 되는지에 대해 명확한 싱크를 맞추고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팀이 복잡한 현실을 소프트웨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행위 자체가 아닌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멘탈 모델을 함께 설계하고 공유한다는 점이다.
카페인 중독
회사 문화 중 하나가 커피타임이다. 회사에서 돈까지 쥐어주며 업무시간동안 동료들과 커피타임을 가지라 지원해 준다. 그래서 모두가 바쁜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건네고 30분정도 시간을 만들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맙게도, 새로 합류한 나를 위해 다들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고, 타이트한 시간 안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해준다. 그래서 친해지고 여러번의 술 자리를 가진 후에야 할법한 깊은 얘기까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내가 가진 소소한 경험도 동료들에겐 흥미로운 자극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 덕분에 내 세계관 역시 넓어졌다.
커피 향만큼이나 강렬한 연결 고리를 매일 쌓는 중.
코드 깎는 노인
이전 회사에서 마주했던 문제들을 떠올리며, 왜 그때는 더 잘 풀지 못했을까 곱씹어보곤 했다.
마케터에서 개발자로, 비즈니스와 가까운 곳에서 제품을 만들어오며 나는 스스로를 문제 해결을 꽤 잘하는 사람이라 여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가 문제인진 알겠는데… 어떻게 풀지?” 라는 벽 앞에서는 자주 막막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구현뿐만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그래서 진짜 문제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 주면 되는지 확신을 갖고 답하긴 언제나 어려웠다.
새로 합류한 팀은 이 문제를 도메인 주도 설계를 통해 풀고 있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팀이 단어나 개념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그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적 사고에 집착에 가까울 만큼 집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코드의 구조적 설계에 앞서, 우리가 발견한 현상은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 현상의 비효율은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을 어떻게 해결 가능한 단위로 쪼갤지를 먼저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소프트웨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계의 문제를 풀어내는 도구여야 한다.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란,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여 잘 정의하고, 해결 가능한 단위로 쪼개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해결하려는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아키텍처나 클린코드는 어쩌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문제 해결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찰떡파파
아빠가 된다. 얼마 전, 뱃속 아기의 태동이 처음으로 느껴졌다.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벅찬 감정이었다. 모두가 반드시 겪어야 할 경험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이 벅참을 몰랐다면 내 삶이 참 아쉬웠을 것 같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남편이 되는 것과는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좋은 남편이란 무엇일까, 좋은 아빠란 무엇일까. 행복한 가정이란 또 무엇일까. 수많은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행복한 아내가 있는 집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행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여전히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다.
다이어트
지난 스타트업 생활을 하며 체중이 109kg까지 늘었다. 살 뺄거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다행히 새로운 회사에 와서는 스트레스가 줄었는지, 몸무게도 서서히 줄어 다시 두 자릿수로 돌아왔다.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난다. 나는 내 아이에게 멋진 아빠가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업무와 가정 그리고 건강이라는 세 축을 균형 잡아 돌리려면 결국 시간 관리가 중요할텐데. 출퇴근 왕복 4시간이 소요되는 이 상황에 운동할 시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