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훈노트 Volume 3

9월의 끝에서, 나는 월초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생각을 하고 있다. 월초의 나는 무엇을 해내야겠다는 계획을 열심히 세워봤다. 든든한 지도를 손에 쥐고 한번 잘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월말의 나는 그 지도가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오히려 길 밖에 있던 풍경들 덕분에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계획이라는 지도, 그리고 길 밖의 풍경

3개월의 온보딩이 끝나고 정규직이 되었다. 팀원들은 농담 삼아 고용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더 조급했다. 이제는 정말 내 실력으로 팀에 기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래서 9월의 목표는 명확했다. 도메인 주도 설계를 우리 팀의 코드에 비추어 학습하고, 이를 통해 모델링과 개발 속도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 야심 차게 독서 목록을 만들고, 사이드 프로젝트의 뼈대도 세웠다. 이 지도만 잘 따라가면, 월말에는 훨씬 성장한 내가 있을 거라 믿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중 어느 것도 완벽하게 이룬 것은 없다. 책은 몇 챕터 읽다 멈췄고, 사이드 프로젝트는 시작만 했다. 계획에 대한 성적표를 매긴다면, 이번 달은 실패에 가깝다.

가치 더하기

3개월간 진행된 힐링페이퍼 KOS팀에서의 온보딩도 끝났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처음 합류할 때 세웠던 목표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좋은 동료가 되는 법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규 입사자로서 나는 팀의 문화를 존중하고 기존의 맥락을 빠르게 이해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믿었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맥락으로 인해 팀의 시간을 뺏거나 논의에 병목을 만들까 두려워, 스스로 충분히 학습하고 생각이 완벽히 정리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배려라는 이름의 방어막이었다. 그러나 온보딩 최종 피드백에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훈, 팀원들을 더 귀찮게 해주세요. 완벽하게 정리된 질문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는 왜 그렇게 충돌을 피했을까? 팀에 빠르게 융화되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지식과 관점이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이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나의 미숙한 생각과 팀이 쌓아온 지식이 부딪히고, 비교하고, 개선하고, 서로 납득하는 그 건강한 충돌이야말로 팀에 더 큰 가치를 더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을 텐데.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성장을 위한 쉼표

정신없는 한 달의 중간쯤, 아내 그리고 강아지 땅콩이와 함께 춘천으로 3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갖는 긴 여유였다.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못했던 깊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미래 계획,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

일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더 명료해졌다. 조급함과 욕심으로 나를 계속 채찍질하기만 했는데, 아내와의 대화 속에서, 땅콩이의 평화로운 얼굴을 보면서 나에게는 성장을 위한 쉼표가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지도 밖으로의 첫걸음

돌아보니 10월은 실패한 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내 안에서 다시 써 내려간 시간이었다.

책상 앞에서 펼쳐놓은 학습 계획이라는 지도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동료와의 대화와 예상치 못한 휴식이라는 길 밖의 풍경은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

나는 그동안 지식과 기술을 머릿속에 쌓는 것만이 성장이라 믿었다. 하지만 진짜 성장은 동료를 신뢰하고, 나의 불완전함을 드러내고, 기꺼이 건강한 충돌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완벽하게 준비된 60점짜리 의견보다, 팀에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40점짜리 질문이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10월에는 지도를 잠시 접어두려 한다. 정해진 길을 완벽하게 따라가는 대신, 동료들을 더 많이 귀찮게 하며 함께 길을 만들어가는 탐험을 시작하고 싶다. 나의 작은 충돌이 팀에 어떤 긍정적인 파동을 만들 수 있을지, 벌써부터 조금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