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가꾸기

"친구들 소식을 보면 불안해. 인스타그램을 지워야 하나 봐."

얼마 전, 아내가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임신과 출산, 곧이어 시작될 육아로 잠시 멈춤을 선택한 아내에게, 친구들의 커리어 소식은 더 이상 즐거운 소식이 아니었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자괴감만 커진다고 했다.

"인스타를 안 봐도, 어차피 만나면 듣게 될 이야기인데.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아."

아내의 말처럼, 문제는 인스타그램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외부의 소음이 들어올 때마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내면에 있었다. 아내는 말했다.

"내면이 단단해야 할 것 같아."

단단한 내면. 참 추상적인 말이다. 단단하다는 건 물리적인 속성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그날 밤, 우리는 단단한 내면의 실체를 찾아 긴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타인을 비추는 거울이다

내면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물건의 안쪽이다. 이는 코어가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라는 내면은, 나라는 육신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라는 외적인 요소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 너무 튀거나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고, 의견 차이가 너무 크면 동질감을 느끼는 새로운 집단을 찾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살아간다.

결국 아내의 불안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나를 세상과 격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비교의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타인의 속도에 맞춰 불안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비교의 내용을 바꿔야 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향상심이 있다. 문제는 이 향상심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발현될 때다. '저 친구처럼 되어야지'라는 목표는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출발선과 과정이 모두 다른 우리에게 끝없는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운과 환경이라는 변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비교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성공이라 불러온 것들 - 좋은 직장, 높은 연봉, 화려한 성과 - 은 사실 AI가 더 잘 해낼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AI가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나만의 가치를 찾아야 할까?

나는 그 답이 시스템적 사고, 즉 세상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그 이면의 원리와 구조를 파악하는 힘, 여러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힘. 이것이야말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다.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향상심의 방향은 남들만큼의 성과가 아니라, 나만의 생각 체계를 갖추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코어 운동

그렇다면 이 생각 체계라는 보이지 않는 근육은 어떻게 단련할 수 있을까? 나와 아내는 가장 고전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읽고 쓰기에서 그 답을 찾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생각의 우물에서 잠시 벗어나는 행위다. 저자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의 세계를 여행하며, 나의 생각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시야를 얻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의 실타래를 푸는 행위다. 내 안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했는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게 된다. 글쓰기는 나 자신을 가장 깊이 이해하게 되는 최고의 메타인지 훈련이다.

물론 이 습관은 하루아침에 단단한 내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읽고 쓰는 행위 자체가 내 안에 단단한 코어를 만드는 과정이다. 외부에서 어떤 소식이 들려와도, 잠시 흔들릴 수는 있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중심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며

아내에게 짧더라도 하루 3번에 나눠 20분씩 독서를 하고 밤마다 그날의 생각이 담긴 글쓰기를 제안했다. 당장의 성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내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관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여정이다.

1년, 2년 후, 아내의 서재에는 직접 읽은 책들과 스스로 쓴 글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것은 세상 어떤 커리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내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역량이자 변별력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불안해질 때, 우리는 잠시 멈춰 나만의 문장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단한 내면의 진짜 모습이다.